길을 닦는 사람들, 성을 쌓는 사람들
유목민은 어떤 사람들인가.
유목민은 끊임 없이 이동하면서 한시도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떠돌아 다니는 삶에 맞춰 소지품을 간소화하고 정보를 능란하게 수집하고 속도를 중시한다. 또한 오아시스 위치를 아는 것을 최고 가치로 여긴다. 그렇게 해서 서로 접속하고 소통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낸다.
유목민은 지금껏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 이유는 크게 둘이다. 우선, 그간 역사 서술이 기록 중심 사관에 편집증처럼 집착했기 때문이다. 유목민에게 문자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들의 문자 의존도는 매우 미약했다. 유목민에 관한 기록은 대부분 정착민 쪽에서 쓰여 졌다. 그래서 기록된 것보다 기록되지 못한 것이 많았다. 기록된 부분들에도 오해와 곡필이 많았다. 기록하는 측은 이견의 여지 없이 자기들을 '문명인'으로 상정한다. '야만족', '파괴자', '비(非)문명' 같은 단어를 붙이면서 기록자들은 유목민의 성격부터 악의적으로 채색했다. 유목민에게 공격-지배 당했던 사건의 기술에는 극도의 피해 의식이 가미됐다. 자기네가 유목민을 공격했던 시기에 관해서는 과도한 우월감을 드러냈다.
유라시아 유목민의 행적은 주로 중국 역사가들의 눈으로 관찰됐다. 그들의 편견은 호칭에서부터 시작한다. 흉노(匈奴)는 시끄러운 종놈, 돌궐(突厥 )은 날뛰는 켈트족, 몽고(蒙古)는 아둔한 옛것......, 명백히 문자의 폭력이다. 한자라는 상형문자가 사람들 마음에 심는 조형의 힘은 알파벳을 비롯한 표음문자와는 판이하게 강력하다. 아메리카를 똑같이 '미국'이라 부르더라도, '쌀 미(米)'로 표기하는 것과 '아름다울 미(美)'의 나라라고 쓰는 게 전혀 다르듯.
둘째, 그간 역사가 오직 공간만을 중심에 놓고 관찰됐기 때문이다. 역사는 다음과 같이 쉽고 명쾌하게 정리된다. 인간은 출현 이후 19만 년 동안 채집이나 수렵 생활을 하다 지금부터 1만 년 전에 하천을 중심으로 농업혁명을 일으켰다. 이후 잉여 생산물이 생겨났고, 그로부터 경제가 본격적으로 발전되고 정착생활이 시작됐다. 6,000년 전,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나일강, 인더스강, 황하 유역에서 도시 문명이 일어났다. 이후 산업혁명을 거쳐 지식혁명까지 인류는 특정 장소들을 중심으로 문명을 일궈왔다. 처음에는 하천 주변에서 인류 문명이 발달하다 지중해, 카스피해 같은 내해와 연안으로 옮겨갔고, 300년 전부터 대서양문명 시대가 계속돼온다는 식이다. 이런 역사 관찰방식은 거의 거부감 없이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지언정 진실은 아니다. 인류사가 자랑해온 4대 문명 발상지는 정확한 용어로 다시 표현하면 4대 정착 문명 발상지라 해야 옳다. 4대 정착문명 거점들은 자연 환경과 역사 경험에 따라 매우 다른 개성을 지니기도 하지만 상당히 공통된 특성도 보인다. 예를 들어 하나 같이 물가에서 출현했고, 식물을 중심에 두고 사고했으며, 오직 씨를 뿌려 거두기를 삶의 기본이자 세상의 표본적 질서로 여겼다. 그렇게 해서 성을 쌓고 울타리를 늘리며 관료제를 발달시켰으며, 공간 이동을 꺼렸다.
농경 정착민들의 우선 관심 대상은 경작할 토지와 비를 내려줄 하늘이다. 옆을 볼 필요 없이, 위(하늘)와 아래(땅)를 봐야 한다. 정착민들은 한 자리에 붙박혀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해결한다. 이웃 사람, 이웃 마을, 이웃 나라와 교류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만큼 폐쇄적이다. 세상 넓은 것도 알지 못한다. 그런 사회에서는 소유 의식이 강해지고 관료제가 발달한다. 천자와 왕을 대신하는 관리가 나서서 사람들 사이 분쟁을 해결하고 세금을 징수하며 행정을 편다. 정착사회는 이처럼 수직 마인드를 기초로 삼게 된다. 잘만 운영하면 모든 것을 평생 보장하는 종신형 사회이자, 식물형 사회이며, 수직 사회다.
그러나 그 사회가 자기 정화력과 절제력을 잃어버릴 경우 온갖 폐해를 드러낸다. 제도피로(制度疲勞) 현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계급과 계층들이 먹이 사슬처럼 생겨난다. 위에 있는 사람들은 군림하면서 아래를 착취하려 든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위에 아첨하면서 자기보다 더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군림하고 착취하려 한다. 그러면서 부정과 부패가 창궐한다.
군림과 착취 구조를 가장 확실하게 지켜주는 것이 '자리'다. '관리(官吏)'를 연상할 필요도 없다. 길거리 좌판상도 '자릿세'를 물어야 장사를 할 수 있다. 자리를 차지하고 이권을 지키려고 사람들마다 혈연으로 뭉치고, 지연으로 묶고, 학연으로 얽어 맨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거부하고 멸시하며 외면한다. 다른 고장 출신, 다른 학교 출신, 다른 집안 사람, 다른 부처 사람, 다른 나라 사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적과의 동침' 만큼이나 거북하게 여긴다.
그런 곳에서는 남에 대한 봉사, 효율, 생산성, 투명성 따위가 구호로만 떠돌아 다닌다. 수직 사회에서 창의력 약화는 필연이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시키기만 하면 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대신 기억력이 존중되고 발달한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기억력이 좋다는 것과 다름없다. 모든 경쟁도 기억력 겨루기가 핵심이다. 기억력을 중시하는 사회는 미래를 사는 게 아니라 과거를 산다. 그런 사회는 허수(虛數)가 실수(實數)를 밀어낸다. 모두 저 잘난 줄 알지만 남이 보기에는 벌거벗은 임금님들의 축제에 불과하다. 자기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천하가 자기를 위해 도는 줄 착각하는 천동설의 신봉자들이 된다. 그런 사회는 닫힌 사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갇힌 사회가 된다. 수직적 사고가 낳는 해악들이다.
그에 반해, 유목 이동민들은 항상 옆을 바라 봐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생존하려면 싱싱한 풀이 널린 광활한 초지를 끝없이 찾아 헤매야 한다. 그래서 더 뛰어난 이동 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더 좋은 무기로 무장해야 한다. 그들에겐 고향이 없다. 한번 떠나면 그만이다. 초원에는 미리 정해진 주인도 없다. 실력으로만 주인 자리를 겨룰 뿐이다. 지면 재산을 빼앗기고 상대편 노예가 된다. 이기면 재산을 늘리고 노예도 거느릴 수 있다. 노예가 된 사람은 주인을 위해 열심히 싸워 노예를 면하고 새 부족에서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기회는 항상 열려 있다. 그들은 그렇게 세상을 향해 달려간다.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