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섬 게임의 땅

제로섬 게임의 땅

- CEO 칭기스칸, 유목민에게 배우는 21세기 경영전략, 김종래 지음


 몽골에는 '강(Gan)'과 '쪼드(Dzud)'라는 두 재앙이 있다. 강은 이상 기온에 따른 집중적 가뭄이고, 쪼드는 가뭄 뒤에 때 이르게 들이치는 강추위다. 두 재난은 농경 정착사회가 겪는 태풍이나 지진보다 훨씬 더 무섭고 위협적이다.


1999년 12월 31일, 세계는 새 밀레니엄 맞이에 들떠 있었다. 그때 몽골 고원의 3,300만 가축들은 죽음의 축제를 맞았다. 강과 쪼드가 연이어 들이닥쳐 2000년 6월까지 30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죽었다.


몽골 사람들은 그런 재앙을 대대로 겪었다. 가축이 죽으면 사람도 먹을 거리가 없어져 따라 죽는다. 그런 상황에선 전쟁이나 약탈도 불가피하다. 죽어 널브러진 가축들 곁에서 유목민의 최고 가치는 '살아 남는 것'이 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스스로 강인해져야 한다. 몽골 유목민의 강인함은 바로 '자연에 맞서는 생존 본능'에서 비롯했다. 그 본능은 지금껏 온전히 이어 오는 성인식에서 엿볼 수 있다.


몽골 사람들은 해마다 처음 닥치는 눈보라를 중시한다. 그 눈보라가 사흘째 몰아치는 날, 그러니까 가장 혹독하게 추운 날 성인식을 치른다. 그 광경은 말 그대로 한편의 장엄한 드라마다. 영하 40도, 눈을 뜨기 어려울 만큼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허허벌판. 두터운 가죽옷을 입고 털모자를 눌러 쓴 몽골 아이 10명이 말 위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린다. 갓 열 살이 된 앳된 소년들은 살을 에는 추위와 바람에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스스로 한 톨 점이 되는 막막한 우주공간을 체험한다. 부모의 배려로 이성 친구들을 초대해 소꿉놀이 하듯 어른들 연애 감정을 흉내 내는 서양 청소년들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윽고 신호가 떨어지면 소년들은 말을 내달린다. 왕복 80 킬로미터에 이르는 눈보라 길의 출발이다. 소년들은 지평선 끝에서 사라졌다가, 두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지평선 위로 점점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무언가 알아 들을 수 없는 외침을 말발굽 소리에 실어 보내 온다. 너무나 추운 나머지 아이들은 귀환 지점을 보면서 울분과 환희에 휩싸여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달려 온다. 그 고함은 인내의 한계를 넘는 시련의 고문을 이기느라 내지르는 비명이자, 시련의 끝을 발견하고서 떠뜨리는 환희와 격정의 탄성이다.


이 통과의례의 결실은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눈보라를 뚫고 온 아이들과 말의 모습은 참혹하다. 하지만 소년들의 눈빛 만큼은 형형하다. 어떤 소년은 너무나 힘든 나머지 고삐를 놓쳐 말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숨이 끊어지는 법은 있어도 말 타기를 포기하는 법은 없다. 스스로 일어나 다시 말 등에 오르지 않으면 그 추위를 벗어날 길이 영영 없기 때문이다.


말의 입가엔 온통 입김이 허옇게 얼어 붙은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흘린 땀이 온 몸에 얼음으로 붙어 있으면서도 뜨거운 김을 펄펄 내뿜는다. 말 고삐를 쥐었던 소년들의 손도 얼어 퍼렇게 동상을 입었다. 고삐를 놓치지 않으려면 동상 걸린 손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소년들은 돌아와서야 동상 걸린 손을 눈 속에 파묻고 비빈다. 이냉치냉(以冷治冷). 동상 든 손은 비로소 다시 피를 돌리기 시작한다.


이렇듯 몽골 아이들은 시련의 들녘에서 강인하게 버려진다. 절벽 아래로 새끼를 떨어뜨려 스스로 올라오는 새끼만 거둬 기르는 사자의 선택에 다름 아니다. 문명의 울타리 밖에서 인간은 스스로 강인해질 수밖에 없다. 생존 본능이라 불러도 좋고, 자연의 선택이라 해도 좋다. 몽골인은 스스로 '푸른 늑대의 후손'이라 칭한다.


800년 전, 몽골 유목민은 무자비한 내전에 휘말려 있었다. 메르키트, 케레이트, 나이만, 타타르 그리고 몽골까지 다섯 부족으로 주요 세력권이 나뉜 채 언제 끝날 지 모를 싸움이 이어졌다. 목초지, 가축, 약탈물을 차지하고 다른 유목 집단을 복속시키려는 싸움이었다.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몽골 최고(最古) 역사서 '몽골비사'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수많은 별을 지닌 하늘도 돌고 있었다.

모든 나라는 우리를 배반했다.

편안히 침대 위로 들어가 자지도 못하고 서로 노략질했다.

푸른 풀로 덮인 대지도 구르고 있었다.

온 나라가 서로 다투고 있었다.

편안히 이불 속에 들어가 눕지도 못하고 서로 공격했다.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서로 다른 부족끼리는 물론 부족 내부에서조차 끊임 없이 투쟁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누가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인가.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몽골 고원은 동족을 상잔하는 제로섬 게임의 무대가 되어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내전을 종식시키고 고원을 통일한 칭기스칸은 결론을 내렸다.


가난과 전쟁의 공포로부터 몽골인들을 해방시키는 길은 몽골 고원 바깥에 있다. 고원 안에서 아귀다툼 할 게 아니라 고원 밖으로 나가자. 그래야만 모두가 배불리 먹고 살 수 있고 더 이상 동족상잔을 하지 않아도 된다


비록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문맹들이었지만 몽골 유목민은 칭기스칸의 결정을 따랐다. 고원 밖으로 시선을 돌려 하루에도 몇 백 킬로미터씩 대지를 내달렸다. 그러면서 그들이 질주하는 여정을 따라 세계 질서가 그들 눈 앞에서 바뀌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 앞에 무릎 꿇는 농경 정착민들을 보면서 머물러 사는 자의 안락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목격했다. 안락은 스스로를 안락사시킨다.


질주를 잠시 멈추고 컨설팅의 보고서를 보자.


매일 아프리카에선 가젤이 눈을 뜬다.

그는 사자보다 더 빨리 달리지 않으면 죽으리라는 것을 안다.


매일 아침 사자 또한 눈을 뜬다.

그 사자는 가장 느리게 달리는 가젤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굶어 죽으리라는 것을 안다.


당신이 사자이건 가젤이건 상관없이

아침에 눈을 뜨면 당신은 질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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